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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 1 : 행방불명자 편
저자 / 역자 : 저자 5 18민주유공자유족회
발 행 일 자 : 한얼미디어 (2007-03-23)
도 서 사 양 : 392쪽| 223*152mm (A5신) / 정가 : 15,000원
 
  5·18 민중항쟁의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는『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제1권 <행방불명자편>. 이 책은 1980년 5·18 민중항쟁 당시 상해를 입은 뒤 사망한 영령들과 행방불명자들의 가족 및 지인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여 작성하였다.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이 시대 정치의 뼈아픈 과거를 담고 있다.  
 
  책을 펴내며 - 5·18민중항쟁을 기억한다는 것
추천의 글 - 반성 없는 역사에 미래는 없습니다
증언록을 엮으며 - 우리가 함께 보듬어야 할 역사

고재덕 | 묘지번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권호영 | 묘지번호 4-94 아들을 목욕시켜주는 마음으로
김경순 | 묘지번호 10-3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선 길
김광복 | 묘지번호 10-4 트럭에 실려 간 넷째아들
김기운 | 묘지번호 4-95 꽃보다 고운 생
김남석 | 묘지번호 4-87 영정 들고 쫓겨다닌 서러운 세월
김성기 | 묘지번호 10-46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마음
김양수 | 묘지번호 10-52 자식들이 사라진 그 밤의 공포
김연임 | 묘지번호 10-54 유골이나마 내 손으로 묻을 수 있다면
김용석 | 묘지번호 10-10 망나니라도 곁에만 있어주면
김인수 | 묘지번호 10-64 쉰 넘어 총을 들고
김재영 | 묘지번호 10-11 금남로 구두닦이 소년
김희수 | 묘지번호 10-40 내가 늙었다고 집에만 있겄냐?
남영임 | 묘지번호 10-15 마지막 최선의 길
문미숙 | 묘지번호 10-16 뇌성마비를 앓던 열한살 아이
박갑용 | 묘지번호 10-17 잿빛 두루마기에 모자 쓴 시아버지
박규현 | 묘지번호 10-42 일곱 살 규현이를 잃고
박현숙 | 묘지번호 10-53 혹시나 하고 기다려온 딸
박형철 | 묘지번호 10-56 먼발치에서 주고받기만 한 눈빛
변오연 | 묘지번호 10-45 앞이 보이지 않는 싸움
송환철 | 묘지번호 10-48 동생을 위한 마지막 마음
신양균 | 묘지번호 10-18 사람은 없고 주민등록증만 찾아가라니
안운재 | 묘지번호 10-19 아름다운 희생
양민석 | 묘지번호 4-91 말도 안 나오는 기막힌 세월
양태월 | 묘지번호 10-21 다시 볼 수 없는 야무진 솜씨
유재성 | 묘지번호 10-23 한 번만이라도 그리운 산천을
이기환 | 묘지번호 10-25 어리지만 든든하고 옹골진 아이
이상복 | 묘지번호 10-41 세 아들을 떠나보낸 한
이정길 | 묘지번호 10-55 텅 비어버린 장남의 자리
이진현 | 묘지번호 10-37 창창한 젊음을 앗아간 군대
이창현 | 묘지번호 10-44 일고살 창현이의 유년
이철우 | 묘지번호 10-43 구천을 떠돌 작은아버지
임소례 | 묘지번호 10-57 사랑하는 네 가족을 한꺼번에 잃고
임옥환 | 묘지번호 10-26 서럽고 아픈 아이의 꿈
장광식 | 묘지번호 10-50 단 하나의 바람
정경채 | 묘지번호 10-51 세상을 향한 눈물의 호소
정명귀 | 묘지번호 10-27 아들 여섯을 모두 잃은 어머니
정복남 | 묘지번호 10-62 동생을 찾아온 기나긴 세월
정인채 | 묘지번호 10-33 미장공 인채 씨의 5월
조덕례 | 묘지번호 10-39 몸뚱이 하나로 모질게 살아온 세월
채수길 | 묘지번호 4-88 진달래 곱던 오월의 형
최영찬 | 묘지번호 10-29 아들 찾아 길을 나선 아버지
최종구 | 묘지번호 10-30 소걸음을 닮았던 발자국 소리
한강례 | 묘지번호 10-61 감쪽같이 사라진 아내
 
 
 

구술: (사)5·18민주유공자유족회
(사)5·18민주유공자유족회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직후 구성된 후 이제까지 일관되게 5·18민주화운동의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 그리고 명예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5·18민주화운동 직후부터 시작하여 1980년대는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진실의 규명을 위해, 1990년대는 학살자처벌과 명예회복을 위해 앞장서 투쟁해 온 유족회는 희생자들에 관한 자료를 정리, 기록으로 남기는 일과 미완의 문제들을 밝히기 위한 자료 발굴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희생자들의 숭고한 뜻을 후세에 계승하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엮음: (재)5·18기념재단
1994년 8월 창립된 (재)5·18기념재단은 5·18관련 피해자들이 받은 보상금의 일정액을 출연한 기금으로 출발하였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된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유·무형적 기념사업과 정신계승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5·18민중항쟁 당시 존재했던 시민 자치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인권과 평화 운동에 앞장서서 5·18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제대 후 폐인이 되어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형과 자신을 버리고 여동생만 데리고 집을 나가버리셨다. 그리고 형도 제 곁에 머물러 주지 않았다. 곁에서 품어줄 부모도 없이, 서로 격려해줄 형제도 없이 어린 재영이 혼자 남겨졌다. 그 서러움과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왔는데, 그 아까운 아이가, 그 가엾은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 계엄군의 총에 맞아야 했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더욱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것은 재영이의 시신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재영이가 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은아버지가 아무리 헤집고 다녀도 재영이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다.
- 1권 132쪽

광주에 올라와 마음 잡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상복 씨를 다시 흔드는 것이 있었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들, 그리고 계엄령의 전국 확대, 광주를 점령한 계엄군들의 만행, 곳곳에서 쓰러져 가는 학생들, 더 주저할 것이 없었다. 그는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거리에 나섰다. 그의 선배인 이성전 씨가 그런 그를 도청 주변에서 목격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고생하라면서 손만 흔들어줬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날은 어쩌면 18일이 아니라 19인지도 모른다. 17일 자정을 기해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18일 새벽부터 계엄군이 각 대학을 장악하고 오후가 되면서 시내에 병력을 배치하고 살상을 자행하자 학생들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수들의 인간적인 모습이란 찾을 길 없는 시위진압 과정을 목도한 시민들이 19일부터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쩌면 광주가 피다가가 될 것이 뻔했기에 그대로 두고볼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손에 각목을 들고 머리띠를 두르고 금남로로 시민들은 모여들었다.
그것이 이상복 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로는 상복 씨를 아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 1권 266쪽

올해 여든 여섯 살의 노모는 지금도 텔레비전에 국립5.18묘지가 나오면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친다. 전에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어 그의 묘비라도 손으로 만지며 하염없이 울어줄 수 있었지만 이제 바깥출입이 어려울 만큼 건강이 나빠져 그마저 할 수 없는 처지다. 부모라고 밥 한 그릇 따뜻하게 못 먹인 것부터 시작해 마지막 가는 길조차 곁에서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막내아들은 그대로 노모의 가슴에 묻혀 있다가 그곳에 가면 산사람처럼 눈에 밟혀오고는 했었다.
가난한 집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제화공으로 일하고 있던 장재근 씨는 5.18민중항쟁에 참여했다가 1980년 6월 3일 광주월산파출소에 연행되어 상무대 합동수사본부로 넘겨졌다. 그는 상무대에서 장갑차를 운전한 시민군으로 지목되어 허위자백을 강요받기 시작했다.
- 2권 266쪽
 
 
 

이 책은 2006년 발간된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다.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의 항쟁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5월 영령 151명의 죽음에 대한 증언록이라면, 이 책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은 항쟁 이후 사망한 44명(1권)과 행방불명된 56명(2권)에 대한 유족들의 기억을 담은 것이다.

“이번 책에서는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80년 5월 민중항쟁 이후에 사망하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짐짓 5·18민중항쟁이 80년 5월 27일에 끝난 사건이라고 이해할 때, 우리는 이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들에 대해 주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쟁이 그때 끝난 것이 아니기에 항쟁 이후에 사망하신 분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행방불명자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국립5·18민주묘지 10묘역에 가면 행방불명자의 묘가 있습니다. 보다 올바르게 말하면 그 묘는 봉분은 없고 묘비만 있을 따름입니다. 그분들은 행방불명이 되어서 시신을 찾지 못하여 ‘영(靈)’으로만 모셔져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행방불명자 분들의 가족들은 다시 한번 마음의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두 권의 책이 이분들의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을 것이나,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그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어서 고통의 무게를 줄여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 (재)5·18기념재단 이사장 이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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