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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 2 : 상이 후 사망자 편
저자 / 역자 : 저자 5 18민주유공자유족회
발 행 일 자 : 한얼미디어 (2007-03-23)
도 서 사 양 : 360쪽| 223*152mm (A5신) / 정가 : 15,000원
 
  5·18 민중항쟁의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는『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제2권 <상이 후 사망자편>. 이 책은 1980년 5·18 민중항쟁 당시 상해를 입은 뒤 사망한 영령들과 행방불명자들의 가족 및 지인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여 작성하였다.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이 시대 정치의 뼈아픈 과거를 담고 있다.  
 
  책을 펴내며 5·18민중항쟁을 기억한다는 것
추천의 글 반성 없는 역사에 미래는 없습니다
증언록을 엮으며 우리가 함께 보듬어야 할 역사

강동일 | 묘지번호 2-84 다친 몸을 끝까지 숨기고
강성원 | 묘지번호 한 순간도 떠나보낼 수 없던 삶
강소만 | 묘지번호 돌려받을 수 없는 남편
고재호 | 묘지번호 총 한 자루의 사연
기일섭 | 묘지번호 4-76 건축 현장으로 가던 길
기종도 | 묘지번호 2-83 5월 희생자들 옆에 묻어 달라
김갑진 | 묘지번호 3-29 버스 운전사 김갑진
김경희 | 묘지번호 딸 경희의 못다 핀 삶
김광호 | 묘지번호 2-81 어디든 숨겨 놓았으면 살았을 텐데
김금단 | 묘지번호 2-73 아들과 함께 정신을 잃은 어머니
김앵도 | 묘지번호 아들을 찾아 나섰다가
김연호 | 묘지번호 3-35 참혹하게 짧은 생
김영근 | 묘지번호 3-97 머리가 터지고 어깨가 내려앉도록
김영기 | 묘지번호 4-64 연행된 지 100일 만에 돌아온 그
김영묵 | 묘지번호 3-58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부상
김영임 | 묘지번호 아내를 위한 작은 사랑
김영춘 | 묘지번호 2-62 아버지의 유훈
김영호 | 묘지번호 4-8 화순 가는 길
김옥섬 | 묘지번호 3-5 부상 후 2년 만에 눈을 감다
김재홍 | 묘지번호 2-63 잘못된 정권에 대한 항거
김정곤 | 묘지번호 3-43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김종남 | 묘지번호 5-43 인생의 황금기를 교도소에서
김종열 | 묘지번호 3-39 노임을 받으러 나간 금남로
김천례 | 묘지번호 2-90 시국이 어수선해도 농사는 지어야지
김춘화 | 묘지번호 3-23 엄마와 딸을 앗아간 5월
김형진 | 묘지번호 2-99 용서할 수 없는 만행
남춘만 | 묘지번호 고통과 분노를 이겨내는 삶
노인섭 | 묘지번호 5-12 부부가 겪은 모진 삶
노재인 | 묘지번호 2-53 가장 가슴 아프고 서러운 것
모기훈 | 묘지번호 차거운 길바닥에서 혼자 외롭게
문명화 | 묘지번호 3-85 삶의 뒤안길에 자리한 남편
박갑수 | 묘지번호 2-58 여든 네살 박갑수 씨
박순철 | 묘지번호 홀연히 떠나버린 아들
박재구 | 묘지번호 3-7 피눈물을 흘리며 한 다짐
박주삼 | 묘지번호 2-69 산송장으로 돌아온 동생
박흥식 | 묘지번호 5월의 후유증과 술
백두선 | 묘지번호 3-66 죽음이 남긴 빈자리
서재형 | 묘지번호 5-50 보상금의 비극
양승길 | 묘지번호 3-40 아들 보듬고 서럽게 울고 싶다
양판철 | 묘지번호 3-49 아직 다 떨치지 못한 그리움
윤석규 | 묘지번호 그날 부상만 입지 않았더라면
윤영효 | 묘지번호 구김살 없이 자라준 아이들이 고맙다
윤우현 | 묘지번호 끝내 자살에 이르게 한 세월
이건성 | 묘지번호 죽는 것만도 못하던 나날
이병휴 | 묘지번호 3-18 결코 씻을 수 없는 한
이영길 | 묘지번호 5-30 지울 수 없는 피멍
장재근 | 묘지번호 3-50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현실
전종식 | 묘지번호 2-94 두 아들을 국립묘지에 묻고
정기봉 | 묘지번호 3-19 약초를 캐러 나간 남편
정낙재 | 묘지번호 3-46 법 없이도 살 사람을
정방남 | 묘지번호 3-64 시동생을 위한 마지막 도리
정윤식 | 묘지번호 잠든 채 세상을 뜨기까지
조강일 | 묘지번호 3-30 의젓했던 아들을 떠올리며
최강식 | 묘지번호 3-36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습관
추채환 | 묘지번호 수습위원이었던 아버지
한계수 | 묘지번호 5-72 무덤가에 자란 쑥으로 국을 끓이다
한영택 | 묘지번호 4-2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지만
 
 
 

구술: (사)5·18민주유공자유족회
(사)5·18민주유공자유족회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직후 구성된 후 이제까지 일관되게 5·18민주화운동의 진실규명과 책임자처벌, 그리고 명예회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5·18민주화운동 직후부터 시작하여 1980년대는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진실의 규명을 위해, 1990년대는 학살자처벌과 명예회복을 위해 앞장서 투쟁해 온 유족회는 희생자들에 관한 자료를 정리, 기록으로 남기는 일과 미완의 문제들을 밝히기 위한 자료 발굴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희생자들의 숭고한 뜻을 후세에 계승하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엮음: (재)5·18기념재단
1994년 8월 창립된 (재)5·18기념재단은 5·18관련 피해자들이 받은 보상금의 일정액을 출연한 기금으로 출발하였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된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유·무형적 기념사업과 정신계승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5·18민중항쟁 당시 존재했던 시민 자치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인권과 평화 운동에 앞장서서 5·18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제대 후 폐인이 되어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형과 자신을 버리고 여동생만 데리고 집을 나가버리셨다. 그리고 형도 제 곁에 머물러 주지 않았다. 곁에서 품어줄 부모도 없이, 서로 격려해줄 형제도 없이 어린 재영이 혼자 남겨졌다. 그 서러움과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왔는데, 그 아까운 아이가, 그 가엾은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 계엄군의 총에 맞아야 했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더욱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것은 재영이의 시신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재영이가 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작은아버지가 아무리 헤집고 다녀도 재영이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다.
- 1권 132쪽

광주에 올라와 마음 잡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상복 씨를 다시 흔드는 것이 있었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들, 그리고 계엄령의 전국 확대, 광주를 점령한 계엄군들의 만행, 곳곳에서 쓰러져 가는 학생들, 더 주저할 것이 없었다. 그는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거리에 나섰다. 그의 선배인 이성전 씨가 그런 그를 도청 주변에서 목격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하고, 고생하라면서 손만 흔들어줬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날은 어쩌면 18일이 아니라 19인지도 모른다. 17일 자정을 기해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18일 새벽부터 계엄군이 각 대학을 장악하고 오후가 되면서 시내에 병력을 배치하고 살상을 자행하자 학생들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수들의 인간적인 모습이란 찾을 길 없는 시위진압 과정을 목도한 시민들이 19일부터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쩌면 광주가 피다가가 될 것이 뻔했기에 그대로 두고볼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손에 각목을 들고 머리띠를 두르고 금남로로 시민들은 모여들었다.
그것이 이상복 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로는 상복 씨를 아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 1권 266쪽

올해 여든 여섯 살의 노모는 지금도 텔레비전에 국립5.18묘지가 나오면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훔친다. 전에는 자신이 움직일 수 있어 그의 묘비라도 손으로 만지며 하염없이 울어줄 수 있었지만 이제 바깥출입이 어려울 만큼 건강이 나빠져 그마저 할 수 없는 처지다. 부모라고 밥 한 그릇 따뜻하게 못 먹인 것부터 시작해 마지막 가는 길조차 곁에서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막내아들은 그대로 노모의 가슴에 묻혀 있다가 그곳에 가면 산사람처럼 눈에 밟혀오고는 했었다.
가난한 집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제화공으로 일하고 있던 장재근 씨는 5.18민중항쟁에 참여했다가 1980년 6월 3일 광주월산파출소에 연행되어 상무대 합동수사본부로 넘겨졌다. 그는 상무대에서 장갑차를 운전한 시민군으로 지목되어 허위자백을 강요받기 시작했다.
- 2권 266쪽
 
 
 

이 책은 2006년 발간된 5·18 민중항쟁 증언록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다.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의 항쟁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5월 영령 151명의 죽음에 대한 증언록이라면, 이 책 《꽃만 봐도 서럽고 그리운 날들》은 항쟁 이후 사망한 44명(1권)과 행방불명된 56명(2권)에 대한 유족들의 기억을 담은 것이다.

“이번 책에서는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80년 5월 민중항쟁 이후에 사망하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짐짓 5·18민중항쟁이 80년 5월 27일에 끝난 사건이라고 이해할 때, 우리는 이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들에 대해 주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쟁이 그때 끝난 것이 아니기에 항쟁 이후에 사망하신 분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행방불명자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국립5·18민주묘지 10묘역에 가면 행방불명자의 묘가 있습니다. 보다 올바르게 말하면 그 묘는 봉분은 없고 묘비만 있을 따름입니다. 그분들은 행방불명이 되어서 시신을 찾지 못하여 ‘영(靈)’으로만 모셔져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행방불명자 분들의 가족들은 다시 한번 마음의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두 권의 책이 이분들의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을 것이나,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그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어서 고통의 무게를 줄여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 (재)5·18기념재단 이사장 이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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