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 도서목록 > 도서상세보기
 
패왕의 가문
저자 / 역자 : 시바 료타로 / 양억관
발 행 일 자 : 한스미디어 (2012-10-15)
도 서 사 양 : / 정가 : 17,000원
 
  일본 역사소설의 거장 시바 료타로가 풀어내는
가슴 뜨겁고 진솔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야기

때는 일본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면서 또한 가장 역동적인 16세기 전국(戰國)시대. 이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일본 역사소설의 거장 시바 료타로가 한 권의 소설로 풀어낸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야기가 바로 『패왕의 가문』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패권을 차지한 이후 비로소 일본은 260여 년의 평화스런 에도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라 미카와는 약소국이었다. 산악지역이라 농업생산력이 떨어지고 인구가 적어 병력 동원 능력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열등했다. 그리고 정치체제는 호족들이 연합하여 다스리는 형식이었다. 이웃나라 오와리나 전국시대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던 가이지역의 다케다 신겐처럼 강력한 지도자가 장수들을 신하로 두고 마음껏 부리는 독재적인 힘도 없었다. 그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떻게 일본을 통일하고 패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도쿠가와 이에야스만의 인내와 체념의 미학, 자기 자신을 냉철히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 가신 집단인 호족과의 관계, 천하 정세를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이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미카와(라는 지역과 사람) 기질 등을 시바 료타로는 그만의 글 용광로에 녹여낸다.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흡사 역사 에세이 같기도 하고 흡사 역사 평설 같기도 한 그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당대를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 파악하게 만든다. 또한 이에야스(와 그의 시대)를 바로 옆에 있는 사람처럼 같이 호흡하게 만든다.




 
 
 
미카와 기질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로
대패
규벌(閨閥)
엔슈 후타마타 이야기
고슈의 멸망
개풍백리(凱風百里)
탈출
고신(甲信) 병합
하쓰하나
불각인(不覺人)
기요스를 향하여
제1전
꼬리를 쳐라!
안도 나오쓰구
잠자리칼
이시카와 가즈마사
오카자키 탈출
도시와 시골
마지막 세월

지은이 후기
옮긴이 후기
 
 
 


저 :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郞
오사카 외국어대학 몽골어과를 졸업했다. 학도병으로 전차부대에 들어가 도치기 현 사노(佐野)에서 종전을 맞았다. 신일본신문사(新日本新聞社)를 거쳐 산케이 신문사(産經新聞社)에서 근무했다. 신문사 재직 중에 데라우치 오요시(寺內大吉) 등과 동인지 『근대설화』를 창간했으며, 『올빼미의 성』(1959)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풍신의 문』(1961~1962) 등 전기성(傳奇性)이 강한 작품을 많이 썼지만, 그 후 『료마가 간다』(1962~1966), 『성채('풍운의 성채'로 번역되었음)』(1969~1971) 등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현대적인 해석을 가한 역사소설의 새 분야를 개척했다. 그 외에 메이지 유신(明治維新)기 정치가인 에토 신페이(江藤新平)의 비극을 다룬 『세월』(1968~1969),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의 생애를 그린 『화신』(1969~1971),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眞之)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등의 인간 군상을 통해 메이지 시대 일본의 여명을 그린 『언덕 위의 구름』(1968~1973) 등의 역작이 있다. 1976년 일본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살아생전 60종의 소설과 50종의 평론, 에세이, 대담집 등을 발간했으며, 그 중 베스...오사카 외국어대학 몽골어과를 졸업했다. 학도병으로 전차부대에 들어가 도치기 현 사노(佐野)에서 종전을 맞았다. 신일본신문사(新日本新聞社)를 거쳐 산케이 신문사(産經新聞社)에서 근무했다. 신문사 재직 중에 데라우치 오요시(寺內大吉) 등과 동인지 『근대설화』를 창간했으며, 『올빼미의 성』(1959)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풍신의 문』(1961~1962) 등 전기성(傳奇性)이 강한 작품을 많이 썼지만, 그 후 『료마가 간다』(1962~1966), 『성채('풍운의 성채'로 번역되었음)』(1969~1971) 등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현대적인 해석을 가한 역사소설의 새 분야를 개척했다. 그 외에 메이지 유신(明治維新)기 정치가인 에토 신페이(江藤新平)의 비극을 다룬 『세월』(1968~1969),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의 생애를 그린 『화신』(1969~1971),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眞之)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등의 인간 군상을 통해 메이지 시대 일본의 여명을 그린 『언덕 위의 구름』(1968~1973) 등의 역작이 있다. 1976년 일본 예술원상을 수상했고, 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살아생전 60종의 소설과 50종의 평론, 에세이, 대담집 등을 발간했으며, 그 중 베스트셀러가 12종, 1백만 부 이상 판매된 작품만 10종이 넘는 일본의 정신적 지주, 시바 료타로. 국가, 종교, 환경 등 전 분야에 걸친 깊이 있는 학문적 견해들 뿐 아니라, 역사소설을 통해 2차 세계대전 후 이른바 일본의 단카이團塊 세대(60년대 학생 운동과 70년대 석유 파동으로 대표되는 혼란기를 살았으며, 7,80년대 경제 고도성장의 주역이 된 세대)들에게 일본이 나아갈 길과 일본인의 원형을 제시해준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역사 소설를 집필할 때마다 ‘트럭 하나 분의 자료를 가지고 글을 쓴다’고 할 정도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그의 소설들은, 다이카 개신에서부터 근대의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일본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녹아있어, 박진감 넘치는 일본사의 한 장면들을 들여다보게 한다. 역사의 큰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과 묘사도 시바의 작품이 사랑받는 중요한 요인. 그의 업적을 기려 1998년에 문예, 학예, 저널리즘 분야에서 창조적 활동으로 주목을 끈 사람에게 수여되는 ‘시바 료타로 상’이 제정되었다. 역대 수상자로는 일본의 석학 '다치바나 다카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애니메이션 계의 대부 '미야자키 하야오' 등이 있다.
역 : 양억관
1956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일본 아시아대학 경제학부 박사과정을 중퇴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소설 인문 교양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솔뮤직 러버스 온리』, 『야구장 습격사건』, 『우안』, 『무한도시 NO.6』, 『너의 친구』, 『베드타임 아이스』, 『120% COOOL』, 『탐정 갈릴레오』, 『아빠는 가출중』, 『한밤중에 행진』, 『우리가 좋아했던 것』, 『용의자 X의 헌신』, 『중력 삐에로』, 『러시 라이프』, 『69』, 『나는 공부를 못해』, 『스텝 파더 스텝』, 『바보의 벽』, 『플라이, 대디, 플라이』, 『남자의 후반생』,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냉정과 열정 사이』, 『공생충』, 『교코』, 『장량』, 『교양으로 읽어야 할 중국지식』,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라라피포』, 『컨닝 소녀』 등을 번역했다.

 
 
   
 
 

시바 료타로가 말하는,
참으로 묘한 사내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바 료타로는 말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은 천재가 아니었다고. 그는 실제적인 체험을 교훈으로 쌓아올려 부단히 노력한 사내이며, 승전보다는 패전을 자신의 내면과 역량을 키우는 힘으로 삼은 것이라고. 이렇듯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피비린내 나는 일본 전국(戰國)시대에서 천하 패권을 차지한 자치고는 의외의 인물이다.

잠시 그에 대해 살펴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라 미카와는 약소국이었다. 산악지역이라 농업생산력이 떨어지고 인구가 적어 병력 동원 능력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열등했다. 그리고 정치체제는 호족들이 연합하여 다스리는 형식이었다. 이웃나라 오와리나 전국시대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던 가이지역의 다케다 신겐처럼 강력한 지도자가 장수들을 신하로 두고 마음껏 부리는 독재적인 힘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떻게 일본을 통일하고 패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시바 료타로는 먼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독특한 기질을 말한다. 즉, 이에야스의 고난에 찬 성장사를 추적하여 이에야스 스스로 자신을 자연인이 아닌 일종의 법인처럼 규정했다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인내할 수 있었고, 어느 한계 상황에서는 체념도 할 수 있었다. 또한 자기 자신을 냉철히 들여다볼 수 있었기에 현실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전국시대 여느 영주들처럼 영웅이 된 듯한 착각과 천하를 차지한 듯한 환상을 뿌리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초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시바 료타로는 말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장에서 패배의 경험이 많다. 전국시대 최강의 군사집단 다케다 군과 한 판 붙은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는 거의 죽다 살아났다. 그 시대의 이름 있는 장수 가운데 이에야스만큼 패주한 경험이 많은 자는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나라 고조와 닮았다. 다케다 신겐이나 우에스기 겐신은 그런 경험이 없다. 오다 노부나가는 드물게 전략적으로 후퇴한 적은 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르러서는 몸 하나로 도망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기기만 하고 진 적이 없는 인간은 어딘지 모르게 물러 보이지” 하고 만년에 이에야스는 말한다. “나는 미카타가하라에서 대패를 맛보았지만 그...시바 료타로가 말하는,
참으로 묘한 사내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바 료타로는 말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은 천재가 아니었다고. 그는 실제적인 체험을 교훈으로 쌓아올려 부단히 노력한 사내이며, 승전보다는 패전을 자신의 내면과 역량을 키우는 힘으로 삼은 것이라고. 이렇듯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피비린내 나는 일본 전국(戰國)시대에서 천하 패권을 차지한 자치고는 의외의 인물이다.

잠시 그에 대해 살펴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나라 미카와는 약소국이었다. 산악지역이라 농업생산력이 떨어지고 인구가 적어 병력 동원 능력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열등했다. 그리고 정치체제는 호족들이 연합하여 다스리는 형식이었다. 이웃나라 오와리나 전국시대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던 가이지역의 다케다 신겐처럼 강력한 지도자가 장수들을 신하로 두고 마음껏 부리는 독재적인 힘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어떻게 일본을 통일하고 패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

시바 료타로는 먼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독특한 기질을 말한다. 즉, 이에야스의 고난에 찬 성장사를 추적하여 이에야스 스스로 자신을 자연인이 아닌 일종의 법인처럼 규정했다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인내할 수 있었고, 어느 한계 상황에서는 체념도 할 수 있었다. 또한 자기 자신을 냉철히 들여다볼 수 있었기에 현실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전국시대 여느 영주들처럼 영웅이 된 듯한 착각과 천하를 차지한 듯한 환상을 뿌리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초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시바 료타로는 말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게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장에서 패배의 경험이 많다. 전국시대 최강의 군사집단 다케다 군과 한 판 붙은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는 거의 죽다 살아났다. 그 시대의 이름 있는 장수 가운데 이에야스만큼 패주한 경험이 많은 자는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나라 고조와 닮았다. 다케다 신겐이나 우에스기 겐신은 그런 경험이 없다. 오다 노부나가는 드물게 전략적으로 후퇴한 적은 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르러서는 몸 하나로 도망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기기만 하고 진 적이 없는 인간은 어딘지 모르게 물러 보이지” 하고 만년에 이에야스는 말한다. “나는 미카타가하라에서 대패를 맛보았지만 그 패배가 내 인생에 얼마나 큰 교훈이 되었는지 모른다”라고 했다.

이처럼 시바 료타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내적 기질을 천하 패권을 차지한 동력의 한 축으로 꼽고, 다른 한 축으로는 그의 나라 미카와적인 기질을 꼽는다. 중세에서 근세로 나아가는 시기의 미카와 사람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과 달리 폐쇄적인 향토의식이 강했다. 이합집산이 일상사처럼 일어나는 전국의 세상에서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다.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니, 한편으로는 융통성이 없었지만 단결력이 강했다. 이에야스 또한 다른 전국시대 영주들처럼 모략적으로 잔혹하게 신하를 죽이는 일을 단 한 번도 저지르지 않았다. 호족들과도 수평적 관계를 유지했다. 수직적이고 종속적인 주종의 관계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오다 노부나가의 요구로 자식과 부인을 죽일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가신 사카이 다다쓰구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유교적 충성 개념이 없었던 전국시대에 주종이 서로 이런 윤리의식으로 싸운 집단은 오로지 미키와뿐이었다고 한다. 시바 료타로는 여기에 큰 의미를 둔다.

천하의 정치는
결코 도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느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자신의 운명을 예감할 무렵, 2세 히데타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내린다. “천하의 정치는 결코 도리를 벗어나서는 안 되느니, 이것을 우리 가문의 좌우명으로 삼아 오래 전하라.” 그랬다. 이에야스는 죽을 때가 임박해서야 패자다운 도량을 보여주었다. 살아생전 그는 인색한 구두쇠였고, 공포와 두려움에 몸을 떨기도 한 존재였다. 어디를 보나 영웅의 풍모란 찾아볼 수 없고, 외모도 일상도 그 재능도 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던 이 인물이 가슴 속 깊이 품었던 웅비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유언은 시공간을 달리하는 지금의 현실 사회에 비추어도 울림이 매우 크다.

사회적 혼란이 최고조에 달한 일본 전국 100년의 시기, 그 100년 동안 이루어진 거대한 역사적 작업이 가문이니 계급이니 하는 가치의 붕괴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구질서는 무너져가고 새로운 질서가 잡히지 않는 지금, 시바 료타로의 [패왕의 가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야기는 현실 사회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힘을 줄 것이다.

천하 경영에 뜻을 둔 자,
지금 당장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어라

 
 
 
 
로고
사내토론방